第4章 少涯 (소애)
** 오역, 의역주의
번국에 도착하니 번국백의후 항소애(项少涯)는 이미 술자리를 마련해 희옥을 맞이했다. 희옥이 묵는 방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아홉 명의 하녀도 둘에 한 개씩 방을 가지고 있다.
나와 자구 (子蔻)는 흩어져서 짐을 정리하기 위해 들고 온 상자를 내려놓고 물건을 진열했다.
방이 매우 넓어서 오히려 우리의 물건이 한없이 적어 보인다.
깨끗이 정리한 후에 우리는 침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는 자구에게 물었다.
"원래 누구랑 살았어요?”
그녀는 입을 납작하게 벌렸다.
"벽약(碧渃)이야, 저 애는 벙어리처럼 사흘에 두 마디 말도 못하니, 정말 지루해.”
나는 웃기 시작했다. 벽약은 이곳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 하완의 여동생으로, 그 나이의 아이답지 않게 항상 조용하고 침착하며 자구와는 극과 극이었다.
반나절을 쉬고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내가 문을 열어보니 옆방의 묵소였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완이 언니가 전해달래. 연회가 5시부터 시작하니 시간을 늦지 마세요.”
나는 가슴에 두 손을 모아 절하며 말했다.
" 묵소 아가씨 고생많으셨어요"
그녀는 막 떠나려던 참이었는데, 내 말을 듣고 돌아보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묵소인줄 어떻게 알았어?”
남소(南素)와 묵소(墨潇)는 매우 비슷한 쌍둥이로 겉보기에는 거의 차이가 없고, 눈짓과 웃음까지 똑같다. 그녀들은 평소에 연한 파란색 또는 연보라색 옷을 즐겨 입으며, 우아하고 깨끗하며, 물위에 갓핀 연꽃처럼 사랑스럽다.
"비밀"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차이점은 묵소가 나를 싫어하고 남소는 나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눈 속의 혐오감은 거짓이 될 수 없어, 나를 바라보는 묵소의 눈빛을 보면 그녀가 묵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묵소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눈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너 잔꾀가 얼마나 갈 수 있을거 같아? 네가 뭘 할 줄 아는지 정말 모르겠어,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연회에서 나는 묵소의 말뜻을 알았다.
그들 여덟 명은 각자 자신이 잘하는 악기를 가지고 있고, 기예가 이미 순청 수준에 이르렀으며, 게다가 완벽한 호흡으로 그녀들의 합주곡인 녹명《鹿鸣》을 들으면 마치 천상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희옥의 뒤편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서예, 그림, 음악 방면에서 줄곧 서툴러서 간신히 곡을 연주해도 창피할 수밖에 없고, 생김새도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묵소가 나를 쓸모없다고 해도 원망할 수도 없다.
다행히 나는 20년 넘게 미움을 받아왔고,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항후야는 수수한 옷을 입었고 불과 스물 일곱 여덟로 보이며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을 가진 늠름한 모습으로 보아 매우 솔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희옥에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공자가 가장 복이 많다고 하는데 오늘 이 <녹명>을 들으니 과연 거짓이 아닙니다. 항씨는 희공자의 복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습니다.”
희옥은 술잔을 들고 말했다.
"별 말씀을요, 후야(侯爷)께서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사이에 아직도 그렇게 서먹하게 불러야 하나요?”
"그럼 항형이라 부르겠습니다.”
"희형 그럼.”
희옥은 자주색 비단 평상복을 입고 있었고 검은 눈동자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항소애 앞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의 기운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숨겨져 있고 조용하며 소리 없이 압박감을 주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아가씨는 아주 낯설어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는 열일곱여덟 정도의 소년이 보였다.
달빛 흰 옷을 입은 소년은 머리를 높이 묶고 빼어난 용모가 깔끔하고 의기양양했다. 나는 그가 항소애의 심복 종자이자 부장(副将) 인 재신(宸梓)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는 나의 침묵이 어색한 듯 설명했다. " 희공자님은 주인어른의 단골손님이고 나머지 여덟 아가씨는 모두 본 일이 있지만 당신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노비가 근래에 와서야 공자님을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아지(阿止)라 하고, 지식(止息 숨을 멈추다)의 지(止) 입니다. "
** to be continued
내가 대답하자 소년의 어색함이 누그러졌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지 아가씨, 안녕하세요, 저는 후야님을 모시는 재신(梓宸)입니다.아가씨의 억양을 들어보니 동쪽 사람인 것 같습니다.”
"네, 제 고향은 선제(先齐)의 땅입니다.”
"역시 제나라 쪽이네요. 나는 제나라 아가씨들을 많이 봤는데 아지 아가씨처럼 깡마르고 키가 컸어요.”
그의 말소리는 어린아이같은 유쾌함으로 약간 높아졌다. 재신은 계속 무슨 말을 계속 하려고 했지만 집사가 나가라고 하자 그는 황급히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활기찬 십대의 소년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또 좌중의 주인들을 보았는데 착각인지 방금 누가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회가 끝나자 희옥은 나를 그의 방으로 불렀다.
그의 방은 역시 화려했고, 천향로는 구름과 안개 같은 백단향을 모락모락 내뿜었고, 바닥에는 량국(梁国)의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침대 위에는 화려한 자수 무늬가 있었다. 번국은 화려한 풍조를 숭상한다고들 하는데, 과연 그랬다.
그는 다른 시종을 물리치고 두 눈에 웃음을 머금고 나를 쳐다보았는데, 내가 자주 보는 웃는 듯말 듯 탐구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항장군과 술을 많이 마셨지만 아주 멀쩡했다. 그의 몸에서 나는 술냄새도 옅어서 많이 마신 모습이 아니고 가벼웠다. 그는 아마 술에 물을 섞었을 것이다.아마도 그는 주량이 좋지 않을 것이다……아마도 그의 술버릇이 매우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출병의 관건은 번국의 왕에게 있다. " 그는 유유히 입을 열었다.
"승상 일파는 출병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소애는 출병을 주장했다. 쌍방이 오랫동안 다투었지만 번군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만약 내가 번국왕을 만날 수 있다면 그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 다만 지금 국군(国君)께서 병환이 있으시니 승상이 책임자이고 그는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애써 내가 국군을 뵙지 못하게 했다. 지금 항소애는 내가 왕(국군)을 만나게 할 수단이 없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눈에는 걱정스런 기색이 없었고 이런 일은 그의 사교술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 제가 할 일이 있나요?"
"그래. 소애는 막사에 오래 머물렀다고 하였는데, 이번에 귀향하여 은근히 집에 승상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으나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첩자가 있으면 행동하는 데 불편하니 첩자를 찾는 걸 네가 도와주었으면 한다."
나는 빙긋 웃었다.
"저는 일개 노복에 불과하니 공자께서는 이렇게 예의를 갖추실 필요가 없습니다. 공자님을 위해 근심과 노고를 나누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희옥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한순간 회복되어 웃음을 터뜨렸다.
"소애는 이번에 그의 부장인 재신이 너를 도와 함께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두 사람은 이미 연회에서 이미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마디 했을 뿐입니다.”
"꽤 잘생긴 소년이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그는 턱을 괴고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고,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공자님은 저보다 자구(子蔻)를 더 걱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자구는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침대에 앉아서 약간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이 오늘 밤 공자님에게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다소 무력한 듯 얼어붙었다.
"공자는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 침대에서 모시길 원할 거예요."
"당신은 공자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자구는 공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인것처럼 약간 혼란스러워했다.
"공자님을 사랑하나요?" 나는 반문했다.
자구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사랑해요.”
나는 그녀의 천진난만하고 확신에 찬 눈빛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럼 오늘 왜 계속 재신을 쳐다보셨어요? 공자님을 보는 것보다 그를 훨씬 오래 쳐다보는 걸 봤어요.”
자구의 얼굴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이불 속에 묻고 울부짖었고 그녀의 검은 머리의 뒷모습만 보였다.
"얼굴이 잘생겨 몇 번 더 봤을뿐이야……" 그녀는 부드럽게 변명을 하고 나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공자님을 경외하는 건 맞지만, 잘생긴 소년을 좋아하는 걸 막을순 없어요.”
"그냥 잘생겼다고요?"
"말투도 상냥하고…...뭐야! 아지 언니가 나를 함정에 빠뜨렸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홍조를 띈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득채우고 약간 화가 나서 뺨을 부풀렸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고, 씻은 뒤 침대 위로 올라갔다.자구는 나를 쳐다보더니, 마침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냥 보고 있을 뿐이죠, 저는 공자님의 노비가 된 날부터 공자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지 언니, 공자님도 안 좋아하는데 어떤 남자를 좋아해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녀는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달빛이 매우 좋아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있었어요.”
한때는 아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랑과는 무관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자구는 눈을 반짝이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저는 공자님을 말고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나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요.”
"나도 그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아."라고 나는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령 부황모후라 할지라도, 기기라 할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개 내가 바라는 건 언젠가 우연히 만나서 그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이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으니,우리는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구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으니 너도 누군가를 좋아할 필요가 없어. 너는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파괴되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슬퍼하지 않을 거야.”
자구는 한참 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그녀는 얼굴을 돌려 지붕을 쳐다보았는데, 또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지 언니는 가끔 좀 무서워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기기도 같은 말을 했었다. 그녀는 올해 겨우 열여섯 살로, 제나라가 망했을 때의 내 나이와 같았다.
나는 그녀의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이목구비와 천진난만한 눈을 보았다. 희옥이 왜 자구처럼 순박한 아이를 시녀로 삼았을까. 단지 그녀의 노래가 좋아서였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여덟 명의 시녀들이 모두 성숙하고 세련되었다면 사람들로부터 방어적이고 의심스러운 태도를 피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구의 천진난만함이 이런 심오하고 예측할 수 없는 깊이를 중화시켜 사람들의 경계심을 완화해 주었고, 정보를 알아내려면 필연적으로 자구를 돌파구로 삼아야 했으니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그녀를 주시하기만 하면 된다.
자구는 순진하지만, 말투가 매우 엄격하고 희옥을 숭배하기 때문에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
희옥이 그렇게 훌륭한 기사인 줄 알았는데 바둑알 하나하나를 고르고 골라서 허점까지 세심하게 설계했구나.
나는 자구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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